전씨(全氏)의 본관

 

감천
(甘川)

1,237가구,
3,870명. 
강릉 2,044가구,
6,333명. 
강원 451가구,
1,431명. 
개성 279가구,
931명. 
거창 467가구,
1,474명. 

경산
(慶山)

4,558가구,
14,742명. 
경성 431가구,
1,374명. 

경주
(慶州)

1,892가구,
6,005명. 

계림
(鷄林)

72가구,
254명. 
고령 340가구,
1,120명. 
고부 93가구,
318명. 
공주 276가구,
912명. 
광산 494가구,
1,519명. 
금산 241가구,
766명. 

기장
(機張)

68가구,
223명. 
김녕 169가구,
543명. 
김해 530가구,
1,634명. 

 

 

 

 

 

 

나성
(羅城)
55가구,
185명. 

나주
(羅州)

1,629가구,
5,169명. 
남원 426가구,
1,288명. 

 

 

 

 

대구 216가구,
641명. 
대전 138가구,
458명. 

 

 

 

 

 

 

보성 224가구,
737명. 
부안 167가구,
498명. 

부여
(扶餘)

148가구,
473명. 

 

 

 

 

상주 312가구,
948명. 
서울 194가구,
576명. 
선산 459가구,
1,501명. 

성산
(星山)

2,772가구,
8,738명. 

성주
(星州)

1,410가구,
4,654명.
수원 120가구,
413명. 
순천 143가구,
481명. 

 

 

 

 

 

 

안동
(安東)

1,123가구,
3,680명. 
안성 135가구,
475명. 
여주 105가구,
333명. 
영월 282가구,
893명. 
예천 232가구,
725명. 

옥산
(玉山)

4,955가구,
15,659명. 

옥천
(沃川)

13,556가구,
43,920명. 
온양 1,729가구,
5,606명. 

완산
(完山)

2,526가구,
7,568명. 

용궁
(龍宮)

8,693가구,
27,706명. 
원주 524가구,
1,606명. 
의성 157가구,
552명. 
인왕 170가구,
553명. 

 

 

 

 

전의 222가구,
730명. 
전주 4,985가구,
16,434명. 

정선
(旌善)

44,316가구,
141,380명. 

죽산
(竹山)

3,439가구,
11,229명. 
진안 258가구,
896명. 
진주 487가구,
1,481명. 

 

 

 

 

 

 

 

 

창원 187가구,
578명. 

천안
(天安)

40,740가구,
133,074명. 
청주 265가구,
918명. 
청풍 50가구,
186명. 
충주 115가구,
377명. 
파평 148가구,
446명. 

팔거
(八莒)

34가구,
115명. 

평강
(平康)

865가구,
2,734명. 
평산 116가구,
359명. 
평양 64가구,
210명. 
한양 120가구,
406명. 

함창
(咸昌)

115가구,
392명. 
함평 149가구,
507명. 
해주 140가구,
481명. 

황간
(黃澗)

64가구,
237명.

 

 

 

 

 

 

 

 

 

 이상 66본

 

 

 

 

 

 

 

 

 

 

임하 3가구,
13명. 
창녕 1가구,
1명. 
초계 2가구,
3명. 
축산 1가구,
4명. 
합천 0가구,
2명. 
해미 0가구,
2명. 
홍주 1가구,
1명. 

 

이상
7본

기타 7가구,
49명. 
미상 72가구,
689명. 

전체 73(66)개의 본관과 153,208가구, 493,419명[21위]. (2000년 통계청 자료)

총 66개의 본관과 430,055명[21위].(1985년)


 

  전씨는 문헌에 178본(本)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중 18본(本)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의 시조 및 유래는 전해오지 않는다.

  모든 전씨(全氏)의 도시조(都始祖)는 백제(百濟) 개국공신(開國功臣) 전섭(全聶, 환성군)이다. 그는 고구려 동명왕(주몽)의 세째 아들 온조(溫祚)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 때 오간(烏干), 을음(乙音), 마려(馬藜[黎]), 곽충(郭忠), 한세기(韓世奇) 등 아홉 사람과 함께 온조를 도운 10명의 공신(십제공신(十濟功臣)) 중의 한사람으로 후에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전란 속에 전섭(全聶)의 후손에 관한 기록은 7세에 걸쳐 소멸되었다.
  신라통일 이후 8세손 전선이 성덕왕 22년 당나라에 입국하여 중국의 문물을 국내에 소개한 인물로 후에 벼슬이 전법(典法)판서에 오르고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섭을 시조로 하고 전선을 득관 중시조로하고 있다.
  전씨문중은 정선,천안,성산 등 18본으로 분관되지만 모든 전씨는 전섭을 도시조로 하고 정선을 대종으로 하며 전국 전씨대동보를 편찬하여 정선파, 천안파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씨대동항렬표(全氏大同行列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