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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name.info :+: 기대승 (奇大升)

 

 기대승 (奇大升)

 [ 1527(중종 22) ~ 1572(선조 5) ]


   조선 문인·서예가.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峰) ·존재(存齋).
   시호는 문헌(文憲)
   전남 나주(羅州) 태어났다.



  1549년(명종 4)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가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570년(선조 3) 대사성, 이듬해 부제학,
  1572년 대사간으로 있다가 병으로 그만두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여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면서부터 선학(先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바가 많았다.
  그 중에서 이황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한 편지는 가장 유명하다.
  이 '사칠이기론(四七理氣論)'의 변론이 있은 후 이황은 그의 학식을 존중했다.
  서예에도 능했다.
  사후 1590년(선조 23)에는 생전에 종계변무의 주문을 쓴 공으로 광국공신3등(光國功臣三等)에 추록,
  덕원군(德原君)에 추봉,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광주의 월봉서원(月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고봉집(高峰集), 논사록(論思錄), 주자문록(朱子文錄) 등이 있다.

 

 

 

 행주기씨(幸州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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